전체 글(13)
-
후회 없이 잘 살다 가기를 ...
이번주로 2차 교육이 끝나고 수료식이 있었다. 코비드 영향도 있었겠으나 지역이 너무 넓어서 모든 회의는 줌으로 하는 점이 좋다. 물리적인 이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점이다. 처음에 교육에 참여할 때는 이 교육을 마치게 되면 이것을 통해 다른 방향으로 이동이 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1차가 시작 되고 해야 하는 과제는 내가 싫어하는 계획안을 작성하는 일이었다. 해본 적이 없는 일을 하려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많은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었다. 한 주, 또 한 주씩 지날 때마다 달리기 속도가 붙듯이 작업 속도도 빨라졌다. 드디어 8주를 다 마치자마자 2차가 시작된 것이다. 이번에는 1차보다 더 어려운 과제였다. 영어도 그렇지만 해석된 한글판은 더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그것을 읽고 그것을 바탕..
13:31:18 -
겉=표면?
보통 사람 관계에서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은 달갑지 않게 여겨진다. 진심을 감추는 사람을 우리는 본능적으로 경계한다. 그런데도 안팎이 너무 달라도 좋아하게 되는 게 하나 있다. 아마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을 텐데, 정답은 ‘수박’이다. 수박을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겉은 초록인데 속은 빠알갛게 잘 익고, 달콤한 즙이 줄줄 흐르니 황홀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알고 있는 것과 전혀 다르게 쪼개보니 속이 허옇고 물기도 없다면 실망은 이루 말할 수 없다.이처럼 안팎이 전혀 다를 때 수박의 진짜 모습이다. 우리나라에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 있다. 바로 청자와 백자다. 그중에서도 청자는 신비하고 깊이 있는 푸른빛으로 유명하다. 외국에서도 소장하고 싶어할 만큼 그 빛깔은 특별하며, 청자의 아름다움은 겉모습으로 시작..
2025.05.29 -
그늘
‘그늘 있는 여자가 좋다’는 어느 시인의 시를 읽은 기억이 있다. 그 구절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의아했다.그때까지 나는 ‘그늘’이라는 것이, 어릴 적부터 자라오며 경제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풍족하지 못하고, 어렵고 쪼들리게 살아온 사람에게 남는 흔적이라고 여겼다.게다가 그 시를 접했을 무렵, 나 자신은 그늘이다 못해 아주 컴컴한 동굴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니 그 시인의 말이 내겐 ‘무슨 소리야?’라는 심정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그런데 시인의 설명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그늘진 사람은 깊이가 있다.”그 구절을 읽고서야 나는 위로가 되었다.그 후로 셀 수 없는 시간이 흘렀다.시간을 이기는 것은 그 무엇도 없다.몸에 좋다고 알려진 김치, 된장, 청국장, 야쿠르트, 와인도 그러하다. 숙성된..
2025.05.28 -
시드는 것에 대하여
옆집은 앞마당이 온통 꽃밭이다. 가지각색의 서양 동백이 이른 봄부터 지금까지 흐드러지게 피다 못해 우리 울타리 너머까지 넘어오는 바람에, 우리집도 덩달아 꽃대궐이 되었다. 아침저녁으로 꽃에게 인사 아닌 인사를 하게 되었다. 이렇게 우리집까지 밝히고, 거기에 향기는 또 얼마나 뿜뿜 내뿜는지. 고맙다는 말을 안 할 수가 없다. 같은 서양동백이 우리 마당에도 한 그루 있는데, 오후에만 해가 잠깐 비치는 까닭에 봉오리만 맺고 있다가 2주 전쯤에야 피기 시작했다. 옆집 꽃은 봄부터 피기 시작해 이제 지기 시작하는데, 우리집 꽃은 이제야 피었다가 지려고 한다. 봄에 피는 꽃, 여름에 피는 꽃, 가을 혹은 겨울에 피는 꽃이 다르지만, 꽃이라면 이쁘지 않은 게 없다. 또한 꽃의 생명도 가지각색이어서 같은 종류임에도 피..
2025.05.27 -
말 그리고
말과 글, 그 닮은 듯 다른 세계성당 미사에서 한국 신부님이 집전을 하셨다. 영어로 진행되는 바람에 내용을 완전히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한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신부님이 “우리는 빵을 먹을 수 있을까요?”라고 물으며 “예, 아니오. 어느 쪽일까요? 예, 맞죠?” 하고 스스로 대답하셨다. 은유적인 표현이었지만 그 뜻을 알아들을 수 있어 나도 함께 웃을 수 있었다.하지만 미사 후반부에 모든 사람들이 크게 웃는 장면에서는 나만 멍하니 앉아 있었다. 말의 맥락도, 유머의 포인트도 전혀 감을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순간, ‘우리가 한 무리에 속하기 위한 첫 관문은 역시 언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같은 언어를 쓴다고 모두 내 편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은 소속감을 형성하는 중요한 출발점임에 틀림없..
2025.05.26 -
엄마와 잇몸
엄마께 전화를 하면 “어, 큰딸” 하고 반기신다. 하지만 그 말은 이상하게도 다정하게 들리지 않는다. 마치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부르는 듯 어색하고 낯설어, 옷에 묻은 먼지처럼 털어내고 싶어진다. 어릴 적, 엄마는 나를 ‘살쐐기’라고 불렀다. 살쐐기라는 풀은 이파리가 길고 빳빳하다. 양쪽 면에는 까슬한 잔털이 나 있고, 가장자리는 톱니처럼 날카롭다. 풀숲을 지나며 살짝만 스쳐도 칼에 베인 듯 상처를 내는 풀이다. 쓰리고 아픈 건 당연한 일이다. 내가 어쩌다 그런 이름으로 불릴 만큼 엄마에게 밉보이게 되었는지, 이유를 아는 것도 있지만 모든 걸 다 알고 있는 건 아니다. 지금까지의 긴 세월을 풀어놓으려니 엉킨 실타래처럼 어디서부터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 말들은 자꾸만 앞서거니 뒷서거니 튀어나와 두..
2025.0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