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화살표

2025. 6. 16. 09:51카테고리 없음

 

산티아고 순례길에는 노란 화살표가 있다는 것을 어느 작가의 책을 읽고 알았다. 그 길은 우리가 누리는 어떤 문명의 혜택을 잠시 보류한 채 걷는다는 것도 함께.
그 어떤 지표나 지시 등이 없는 길을 걷는 그 길의 순례자들에게 유일한 지침은 바닥, 벽, 또는 나무에 그려진 노란 화살표뿐이라고.
그 노란 표시는 그 길을 걷는 사람에게 지금 가고 있는 이 길이 맞다는 확신과 함께 길을 잃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두려움을 종식시키는 데 충분하다.

내가 사는 곳의 모든 길은 노란 화살표 투성이다. 굳이 산티아고를 가지 않더라도 모든 길은 트여 있고 또 길 끝에는 다른 길과 맞닿아 있어 길을 잃을 위험 같은 것은 없다.
길은 단순히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삶의 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늘 선택의 갈림길에 서기도 하고, 더구나 순간순간 감정의 흔들림 속에도 여러 갈래의 길이 있다.

그래서 산티아고 길은 의미가 있다. 이 길을 걷던 수많은 순례자의 길이었기 때문에.
인적도 없고 문명도 없는 길을 걸으면서 먼 옛적의 순례자들이 느꼈을 느낌과 생각을 흉내 냄으로써 잠시나마 현실에서 찌든 내 모습에서 벗어나 보는 체험을 해보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지금 내가 처한 현실과 편견, 생각 등을 반추해 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나는 아직 그 길을 걸어보진 않았지만

나는 날마다 여기의 노란 화살표를 따라 걷는다. 한적하고 사람 없는 길을, 때론 빠른 걸음으로, 대부분은 답보하듯 한다.
그러면서 내가 가야 하는 나머지 길은 무엇일까에 대해 끊임없이 골똘한다.
그 일이 화폐로 계산된다면 좋은 일이겠으나, 설사 계산되지 않는 일일지라도 나머지 남은 삶을 의미 있게 마무리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다.